반야심경

삼매, 경, 공 49) Attachment of Arhat and Pratyekabuddha - The Heart Sutra

xianwen.bli 2025. 2. 1. 05:36

대부분 공을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봅니다. 빈 공간으로 연결짓습니다. 거기 아무것도 없는 것, 그것은 공이 아닙니다. 그것은 빈 공간이지 불교에서의 공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공은 반응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합니다. 단지 거기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때리고 꼬집어도 공합니다. 왜냐하면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픔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칭찬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체면을 잃는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흠모를 받는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공입니다. 공은 개념이 아닙니다. 공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반응하지 않음입니다. 집착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공은 그것이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다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가지거나 가지지 않거나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공의 의미입니다. 

 

아라한과 벽지불은 그들의 단계에 도달하면 모든 것이 공함을 봅니다. 그들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법공에 집착합니다. 그들은 집착하지 않음에 집착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공함을 봅니다. 여러분이 진짜가 아님을 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분을 도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공이라는 개념에 매우 집착합니다.

 

우리는 많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공에 도달합니까? 집착을 버림으로써입니다. 수행할수록 더욱 집착을 내려놓습니다. 집착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삼매가 필요합니다.

 

보살은 고집멸도도 없고 이해도 얻음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 상태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미리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거기 도달했을 때 거기에 집착합니다. 그것이 아라한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소승과 대승의 차이입니다. 대승에서는 거기 도달했을 때 집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거기 집착하면 나는 여러분을 때릴 것입니다. 

 

공의 상태에 도달하면 어떤 것에도 집착할 이유가 없는데 무언가를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합니다. 거기 들어갔다가 나와서 일해. 그것이 대승입니다. 대승에서 우리는 여러분 스스로만 즐기게끔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승에서 우리는 여러분을 거기 데리고 가지만 나오기 위한 씨앗을 미리 심습니다. 대승을 수행할 때 우리는 반드시 여러분이 나오게끔 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나오게끔 하기 위해서 계획을 세웁니다.

 

삼매력이 부족하면 부처님 말씀을 이해할 방도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단계에 따라 그 정도만 이해를 합니다. 예를 들어 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삼매력에 따라 각각 다르게 이해를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삼매력을 키우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애  우리는 삼매를 키우기 위해서 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혜를 엽니다. 정법은 여러분이 삼매력을 키우도록 돕습니다. 그것이 주요 목적입니다.  선을 가르치거나 정토를 가르치거나 만트라에 대해서 가르치거나 삼매력 계발 이상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바른 삼매력을 키우기 위해서 경을 공부하세요. 나의 말이 경과 일치하지 않으면 나를 믿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스승 없이 선지식 없이 경을 공부합니다. 이것은 좋습니까? 

훌륭한 스승이 있으면 그와 함께 공부를 하세요. 그러면 혼자 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얻습니다. 하지만 선지식이 없고 좋은 스승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혼자서 경을 공부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이해에 대해서 확신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혼자 공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잘못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안다고 하는 정도는 단지 그들 삼매 단계의 수준 정도입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이해의 정도는 삼매력의 단계에 의해 제한됩니다. 그래서 대승을 공부한다면 자신에 대해서 확신하지 마세요. 진정한 지혜가 있으면 결코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대승의 지혜입니다.

 

여러분은 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경을 들어야 합니다. 스님들은 경을 설명해야 합니다. 경을 설명하지 않으면 정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스님들은 가르치라는 말을 듣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찍 가르치지 않습니다. 준비가 되었을 때 가르쳐야 합니다. 언제가 준비된 때입니까? 스승이 가르치라고 말 할 때 준비가 된 것입니다. 삼매의 어느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어떤 단계입니까? 수다원입니다. 그 아래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수다원 그 이전에는 미혹합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방향 감각 없이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을 감고 운전하는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습니까? 

 

수다원은 입류라고 합니다. 성인의 흐름에 들었습니다. 이는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올바른 방향입니다.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끕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승의 밑에서 가르치기를 원합니다. 스승 밖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YlJPvMTJbQ